종종 그럴 때가 있습니다.
아 그때 그 행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 그때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누군가에게 내가 한 행동을, 내가 한 말을 지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웹상의 기록을 지우기는 쉽지만,
현실 속에서 무언가 지우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우개'가 더 생각납니다.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고 지우던 기억.
시험지에 답을 써보고 지우다가 종이가 찢어지던 기억.
책상에 낙서를 열심히 했다가 다시 빡빡 지우던 기억.
지우개로 여러 흔적은 지우지만,
기억은 더 풍성해집니다.
backspace로 지우는 것이 쉬워진 시대에.
오히려 내 손으로 지움의 가치를 느끼게 하는 지우개.
누군가의 흔적을 지우는 대가로
자신의 흔적을 없애는 지우개.
문구 보물 상자를 여는 뉴스레터 <문보장 1991> 두 번째로 열어볼 문구 보물 상자는 바로 지우개입니다. |
|
|
식빵이 지우개?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 지우개는 ‘고무'로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고무지우개 전에는 어떤 것으로 지웠을까요? 바로 식빵입니다. 빵조각으로 연필 자국을 지우곤 했습니다. 그림이나 도면 등을 그리다가 배가 고파지면 지우개로 쓰던 빵 조각이나 빵의 딱딱한 껍질 부분만 떼어먹기도 했다고 해요.
그러다 18세기 탄성 고무가 지우개로 활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도 지우개가 없는 상황에서 무언가 지워야 한다면 각양각색 도구를 쓰곤 하지 않나요?. 손으로 빡빡 지워보기도 하고, 침(!)을 묻혀 지워보기도 하고, 정 안되면 연필로 지우고 싶은 부분을 검게 만들어 버리곤 하죠. 지우개가 발명되기 전에 빵조각을 쓴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일반적인 생고무는 추위에 노출되면 딱딱해지고 잘 부서지고, 고열에서는 말랑말랑해지고 끈적끈적해져 지우개로 쓰기에 어려운 점이 있죠. 그렇지만 우리에겐 위대한 발명가들이 있습니다. 미국의 발명가 찰스 굿이어는 고무를 안정화하는 처리법을 만듭니다. 고무에 황을 넣고 고압으로 쪄내 내구성을 강화한 가황고무. 이 가황고무 덕분에 지우개는 널리 쓰일 수 있게 되었죠.
연필도 그렇고 우리의 문구 생활은 모두 위대한 과학자들과 발명가들 덕분입니다. |
|
|
지우개 달린 연필은 특허가 될까?
1858년 미국 하이먼 리프먼은 ‘연필과 지우개를 합친 것'으로 미국 특허 번호 19730을 따냅니다. 일반적인 연필이지만 전체 길이의 1/4는 지우개인 연필이었지요.
1862년 하이먼 리프먼은 조지프 레켄도르퍼에게 약 10만 달러에 ‘연필과 지우개를 합친 것'의 특허를 팔았습니다. 레켄도르퍼는 리프먼의 '연필과 지우개를 합친 것'의 디자인을 발전시켰지요. 그렇지만 리프먼과 조지프의 특허는 무효로 판정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미 존재하는 연필과 고무를 가져다가 새로운 성능을 만든 것이 아닌 그저 붙였기 때문이지요. 법원은 리프먼의 디자인을 해머의 손잡이에 드라이버를 다는 것과 같은 것으로 보았지요. 합치면 더 편리해질 수는 있지만 특허를 따낼 만한 발명품으로서의 자격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여러분은 지우개가 달린 연필이 특허가 무효가 될 만큼 새로움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시나요? |
|
|
첫 번째 보물 상자 ‘연필' 편에 보았듯이, 연필은 흑연으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종이에 연필로 무언가 쓰면 종이 표면에 흑연 분말이 붙지요. 지우개로 지우면 이 흑연 분말이 지우개에 달라붙어 종이 위의 글자가 지워지게 됩니다.
이전에는 잉크 펜으로도 글을 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때도 지우개는 필요합니다. 잉크는 흑연과 다르게 잉크가 종이 섬유에 스며든 상태로, 이를 지우기 위해서는 종이 섬유 자체를 깎아 내야 합니다. 그래서 초기에 잉크 지우개를 보면 금속 형태로 이루어져 칼과 비슷해요.
1909년 미국의 회사원 조지 S. 밀리트는 동료 직원들의 장난스러운 키스를 피하려다 자신의 주머니에 있던 잉크 지우개 칼날에 찔려 세상을 떠나게 되는 비극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
|
|
1930년대 독일의 Pelikan사는 칼날처럼 물리적으로 잉크를 지우는 것이 아닌 화학적인 반응을 사용해 잉크를 지울 수 있는 지우개를 발명합니다. 처음에는 잉크를 지울 수 있는 표백제를 개발했고, 이 표백제를 ‘Radierwasser’ 또는 ‘Tintentod’로 불렀는데 Tintentod를 영어로 해석하면 Ink death입니다.
이후 1972년 “Tintentiger’이라는 최초의 잉크 지우개 펜을 만들었죠.
1977년 Pelikan사는 하나의 펜에 지우개와 수정액을 통합한 Peliakn-Super-Pirat 출시했습니다. 독일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는 잉크 지우개죠. |
|
|
Pelikan Super Pirat의 구조(출처 : Pelikan 공식 홈페이지) |
|
|
잉크 지우개는 어떤 원리로 잉크를 지울까요? 바로 잉크 화학 반응의 역반응입니다. 만년필로 글자를 쓰면 잉크 속 타닌에 공기 중의 산소가 결합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산소와 결합한 2가 철 이온이 3가 철 이온이 되고, 타닌과 결합하면서 검게 변합니다. 잉크 지우개는 산소를 빼앗는 성질을 가진 ‘수산'을 사용해 잉크의 산소를 빼앗습니다. 이로 이에 따라 3가 철 이온은 2가 철 이온이 되지요. 그리고 표백제 성분 차아염소산나트륩액을 사용해 염료가 사라지면서 글자가 지워지게 됩니다.
볼펜용 잉크 지우개도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표백제인 차아염소산나트륨으로 색소를 탈색하고, 케톤으로 잉크 속의 수지를 녹인 뒤 떠오르는 부분을 닦아 냅니다. 다만 모든 볼펜을 지울 수는 없고 유성 염료 타입의 볼펜 잉크만 지울 수 있지요. |
|
|
세상에 참 다양한 지우개가 있습니다. 세상에 다양한 쓰는 도구가 있는 것처럼 그 도구에 맞게 지울 것들이 필요하니까요. 여러분들에게 개성을 가진 지우개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
|
|
스테들러 슬라이딩 지우개
종종 지우개가 부서졌던 경험 다들 한 번쯤 있지 않으세요? 지우개가 얼룩덜룩 많이 더러워져 손에 묻었던 적은요? 이제 걱정하지 마세요. 스테들러 슬라이딩 지우개가 있으니깐요.
슬라이딩 케이스 안에 지우개가 들어가 있어 깨끗하게 지우개를 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보관도 용이하죠. 리필도 있어 추후 리필 지우개만 사서 다시 케이스에 낄 수도 있습니다. |
|
|
스테들러 슬라이딩 지우개(사진 출처 : 스테들러코리아 공식 홈페이) |
|
|
먹으면 안 돼요! 캐러멜 지우개
콩 한 쪽도 나눠 먹듯이 지우개 하나도 나누는 사이가 있습니다. 꼭 지우개가 필요한 수학 시험에 지우개가 없어요. 그래서 친구에게 급하게 SOS를 치곤합니다. "지우개 하나만 잘라줘!"
이런 우리의 니즈를 알았던 것일까요? 하나하나 나눠 먹을 수 있는 카라멜처럼 사이좋게 지우개 나누고 까서 지울 수 있는 지우개가 있습니다! 바로 캐러멜 지우개.
실제 캐러멜처럼 하나하나 포장이 되어있어 정말 캐러멜인줄 알고 드시는 분도 있다고 하니 조심하세요. 그저 지우기만 해주세요. |
|
|
파버카스텔 니더블 지우개
그림 그리시는 분들은 아실 거예요. 특히 연필로 데셍할 때, 아주 섬세한 표현이 필요해요. 그렇지만 대부분의 지우개가 끝이 뭉툭해서 지우기 어려워요.
아주 말랑말랑한 떡처럼 손으로 조물조물하면 모양이 자유자재로 바뀌는 지우개가 있습니다. 바로 파버카스텔 니더블 지우개(a.k.a 떡 지우개). 찰흙처럼 손쉽게 모양을 바꿀 수 있어 섬세한 부분을 지울 때 매우 유용한 지우개예요.
원하는 부분에 맞춰 모양이 변형할 수 있어 지우개를 아깝게 자르지 않아도 되고 새로운 지우개를 사지 않아도 되죠. |
|
|
자유자재로 모양을 만들 수 있는 파버카스텔 니더블 지우개 (사진 출처 : www.arsavingclub.co.za) |
|
|
읽고 쓰는 것에 진심인 여러분들을 위해 지우개에 대한 몇 가지 책을 추천합니다.
처음 추천하는 책은 리오나와 마르쿠스의 <낙서가 지우개를 만났을 때>입니다. '낙서'를 의인화한 어린이 도서이지만 성인들에게도 큰 의미를 주는 책이에요. 낙서가 아닌 다른 무엇이 되고 싶은 '낙서'. 낙서는 지저분한 것을 먹어 치우는 '지우개'를 만나게 됩니다! 지우개를 요리조리 피해 다니다 보니, 낙서는 예술이 되고 자기 자신을 믿으면 무엇인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죠. 어쩌면 지우개는 우리의 정체성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을 만들어 주는 것 아닐까요?
다음 추천하고 싶은 책은 이현정 저자의 <지우개스탬프 이야기>입니다. 지우개가 단순히 지우는 도구를 넘어 '조각'이라는 멋진 취미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책이에요. 무언가 내 손으로 만들어 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분들이라면 지우개를 조각해 지우개 스탬프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마지막으로 추천하고 싶은 책은 오이뮤의 <Eraser 453>이에요. 점보 지우개로 유명한 '화랑고무'와 협업해 화랑고무에서 만들어 온 453개의 지우개를 살펴보고 국산 지우개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책이지요.
<낙서가 지우개를 만났을 때>와 <지우개스탬프 이야기>는 교보문고 인터넷 서점에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
|
앞으로 '지우기'에 진심일 사람들을 위해 저의 동물 친구 '거북이'가 추천하는 연필은 바로 화랑고무 지우개입니다.
1950년 한국 최초로 지우개를 만든 화랑고무. 화랑고무는 '장인 정신'으로 단 하나의 지우개도 허투루 만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점보 지우개는 어린 시절부터 우리 옆에서 함께 지움을 해주었어요. 부드럽고 잘 지워지면서 부담 없는 가격대로 우리와 함께한 화랑고무. 화랑고무와 함께 지워나갈 미래가 더 기대됩니다. |
|
|
지금 문보장에서는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해보실 수 있으세요. 바로 <숲속, 일기 쓰기>.
읽고 쓰는 사람들의 하루의 마무리이자, 연말을 마무리하는 방법 바로 일기 쓰기가 아닐까요? 이런 여러분들을 위해 도심 속 문구 아지트 문보장이 일기 쓰기의 새로운 재미를 선보입니다. 문구 보물 창고 속 펼쳐진 숲을 동물 친구들과 함께 따라가며 발견하는 일기 쓰기의 새로운 재미
<숲속, 일기 쓰기>.
|
|
|
문보장의 동물 친구들이 추천하는 문구들로 쓰는 재미에 동물 친구들이 쓴 일기를 보는 재미까지 있습니다. 여기에 일기에 관련한 책을 필사해 보고, 그림일기를 그려보며 동심을 찾아볼 수 있어요.
11월 문보장 광화문점에서 동물 친구들과 함께 일기 쓰기의 새로운 재미를 찾으러 출발해 볼까요?
📍 문보장 광화문점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 교보생명빌딩 지하1층) 📆 기간: 11/8(수) ~ 12월 말
|
|
|
아참! 그리고 지금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는 책과 문구로 삶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교보문고를 즐기는 새로운 방법을 제안하고 있어요.
오랜 시간 교보문고 곁에서 함께 하온 기업인 신수정, 이야기장수 대표이자 편집자 이연실, 가수이자 한국 파이롯트의 대표 김진표, 소설가 최은영, 실리카겔의 보컬 김한주, 프릳츠 대표 김병기, 그리고 교보문고를 만든 직원들이 함께했다고 해요.
<숲속, 일기 쓰기>를 통해 일기 쓰는 새로운 재미도 알아보고, 새롭게 바뀐 교보문고도 만나보세요! |
|
|
12월 15일 열 보물 상자는 ‘만년필’에 대한 보물 상자예요.
만년필에 대해 듣고 싶은 이야기와 오늘 지우개 이야기에 대한 의견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총 5분에게 문보장 지우개를 선물로 드릘게요!
이벤트 기간 : 11월 15일~11월 31일
당첨자 안내 : 12월 초 개별 안내 |
|
|
지우개에 대한 보물 상자를 열어보니 이런 생각이 드네요.
지우개 똥이 생겨 책상이 더러워진다는 이유로
지우다가 연필이 번지기도 하는 이유로
잘 지워지지 않으면 연필의 흔적이 남는다는 이유로
그 소중함의 가치를 지우개로 지우듯이 지우지 않았나 싶네요.
연필로 무엇을 지우던
화면 속 무엇을 지우던
지우개의 소중함을 꼭 잊지 말아 주세요.
문보장 1991.
오직 매달 191명의 구독자와만 함께 문구 보물 상자를 여는 뉴스레터를 매달 15일 발행한다는 사실 알고 계시죠? 그럼 보물 상자를 열 191명을 기다리며 저는 12월 15일 다시 찾아올게요.
그럼, 12월 15일에 만나요. |
|
|
문보장 1991
도심 속 문구 아지트 교보문고 문보장이
매달 15일, 오직 매달 191명의 구독자와 함께
문구 보물 상자 여는 뉴스레터입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