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필.
어느 누군가에게는 로망인 단어입니다.
만년필로 멋들어지게 나만의 서명을 하며 나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로망.
역사적인 순간에도 만년필이 자주 등장합니다.
맥아더 장군이 일본의 항복 문서에 서명했을 때도 만년필이 함께했고,
미국과 소련의 정상들이 만나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는 그 순간에도,
서독과 동독의 총리들이 통일 조약에 서명하는 그 순간에도 만년필이 함께 했었죠.
이렇게 찬란한 시작을 함께한 덕인지.
만년필로 나의 역사를 써 내려가야 할 것 같습니다.
2023년은 당신의 역사를 만년필과 함께 마무리하고
앞으로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길 바라며,
문구 보물 상자를 여는 뉴스레터 <문보장 1991> 올해 마지막으로 열어볼 문구 보물 상자는 바로 만년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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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에서 만년필로
시간을 거슬러 만년필의 시작을 찾아볼까요? 만년필의 위대한 시작은 '갈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갈대 줄기를 비스듬하게 베어 펜으로 사용했습니다. 갈라진 줄기 사이로 잉크가 올라가는 모세관 현상을 이용했지요. 모세관 현상은 모세관(가는 관)을 액체 속에 넣었을 때 분자 사이의 인력과 분자와 가느다란 관의 벽 사이에 작용하는 인력에 의해 가느다란 관을 채운 액체가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현상입니다.
갈대 펜은 6세기 이후 깃털 펜으로 진화했습니다. 갈대 펜은 파피루스 같은 거친 표면에는 적합했지만, 양피지 같은 부드러운 종이가 발달함에 따라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깃털 펜은 뾰족하게 깎을 수 있고 섬유질이 많은 갈대보다 잘 쪼개지지 않기에, 부드러운 종이에는 깃털펜이 적합했습니다.
세비야의 대주교인 성 이시도루스의 기록을 보면 깃털 펜을 피나(pinna), 갈대 펜을 칼라무스(calamus)로 부릅니다. 매달리기(pendeno)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피나'는 '날기'라는 의미입니다. 깃털 펜의 깃털은 새의 깃털이기에 깃털로 나는 새를 연상해 '피나'라는 단어 그대로 사용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칼라무스는 '두다'라는 뜻의 칼라레(calare)에서 유래한 단어로 액체를 담고 있기 때문에 '칼라무스'라고 불린 것으로 추측합니다.
잉크의 흐름을 조정해라!
기술이 발전하면서 깃털 펜은 점차 자취를 감춥니다. 깃털 대신 금속 펜촉으로 교체되고 펜촉은 더 가늘고 유연해집니다. 또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싸게 대량 생산할 수 있었지요.
영국의 조사이어 메이슨은 가격이 싸면서 성능이 좋은 강철제 펜촉을 만들어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칩니다. 그렇지만 강철제 펜촉을 끼운 펜은 단점이 있었으니, 바로 잉크병에서 다시 잉크를 찍어야 한다는 점이었죠.
1884년 미국의 루이스 에드슨 워터맨은 이를 해결합니다. 펜 속에 잉크를 저장하고, 만년필 펜촉에 틈을 주어 그 틈 사이로 중력과 모세관 현상에 의해 잉크가 흘러나오도록 해 바로 필기할 수 있는 만년필을 개발한 것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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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도 워터맨은 펜촉에 작은 구멍을 뚫어 잉크가 일정하게 나오게 하는 등 계속 더 좋은 만년필을 위한 개발을 합니다. 1899년 워터맨은 본격적으로 공장을 세워 대량으로 만년필을 생산하고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끕니다. 덕분에 포츠머스 조약, 찰스 린드버그의 대서양 횡단 등 중요한 역사적인 순간에 워터맨이 등장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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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역사적인 순간에 만년필이 많이 등장해서일까요? 만년필에는 숨은 이야기들이 많이 있어요. 몇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이야기로 파는 워터맨
앞에서 소개한 워터맨 만년필에는 멋진 발명 스토리가 있어요.
루이스 워터맨은 교사, 책 영업 사원, 보험 영업 사원 등 다양한 일을 했습니다. 보험 영업을 열심히 하던 워터맨. 오랜 설득 끝에 고객과 대형 계약을 성사했고, 계약서에 서명만 남았던 그 순간! 펜에서 잉크가 새는 바람에 서류에 잉크 얼룩이 번져버렸죠. 고객은 이를 보고 좋지 않은 징조라 생각해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고 가버립니다. 이를 보며 워터맨은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잉크가 새지 않는 펜을 만들고자 마음먹었고, 워터맨 만년필의 위대한 시작이 열리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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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이 이야기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워터맨이 살아있을 당시에는 발명 스토리에 대한 언급이 없었고, 초기의 회사 창업 배경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 배경에 대한 기사에도 언급이 없었죠. 만년필 속 숨은 이야기의 숨은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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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개의 루비, 945개의 블랙 다이아 그리고 황금.
세상에서 가장 비싼 만년필은 얼마일까요?
바로...! 800만 달러입니다. 한화로 100억이 넘죠.
이 만년필은 티발디(Tibaldi)의 풀고르 녹투르누스(Fulgor Nocturnus)입니다.
Fulgo Nocturnus는 밤의 빛을 뜻합니다. 바로 이 만년필에는 검은 다이아몬드가 반짝반짝 빛나기 때문이죠.
945개의 블랙 다이아, 123개의 루비 그리고 금으로 구성된 풀고르 녹투르누스는 2010년 상하이 경매에서 800만 달러에 팔렸습니다. 이 만년필이 특별한 건 비싼 가격 때문뿐만 아닙니다. 바로 황금 비율이라는 특별함이 풀고르 녹투르누스에 있어요.
풀고르 녹투르누스는 뚜껑을 닫았을 때 뚜껑과 배럴(잉크가 담긴 통)의 비율이 황금 비율을 이루고 있어요. 가장 조화로워 미적으로 완벽한 비율이라고 여겨지는 황금 비율(약 1:1.618)은 레오나드로 다빈치의 작품, 피라미드 등에 사용되었습니다.
황금 비율의 상징성 때문에 풀고르 녹투르누스의 가치가 더 빛나는 것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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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00만 달러에 낙찰된 Fulgo Nocturnus 만년필(출처 : luxurylaunche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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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처럼 만년필은 많은 작가들이 좋아하는 글쓰기의 벗입니다. 작가들의 만년필을 살펴볼까요?
아서 코난 도일
셜록 홈즈의 작가 아서 코난 도일은 파카 만년필을 좋아했다고 해요. 셜록 홈즈를 파커 듀오폴드 만년필로 집필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파카의 대표적인 만년필 '듀오폴드'.
1921년 출시한 듀오폴드는 높은 퀄리티와 주황색의 세련된 디자인으로 주목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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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카 듀오폴드의 초기 모습(출처 : penhero.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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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듀오폴드는 비행기에서 펜을 떨어뜨려도 깨지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대담한 광고 캠페인으로 주목받았지요. 2021년 듀오폴드는 100주년 기념 스페셜 에디션을 선보이며 읽고 쓰는 사람들 수집욕을 자극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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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카 듀오폴드 100주년 기념 출시한 스페셜 에디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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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
나쓰메 소세키의 산문 '나의 만년필'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나와 같이 기계적 편리함에는 그렇게 무게를 둘 필요가 없는 원고만 쓰고 있는 자나,
만년필을 잘못 샀거나 잘못 사용하여 다소 애먹고 있는 자조차도,
마침내 만년필을 전폐하려고 하면 이렇게 불편을 느끼는 바가 있다.
따라서 그 밖의 사람들이 가격이 얼마 건 붓을 버리고,
펜을 버리고 만년필로 향하는 것은 그럴 필요가 있기 때문이니,
재력이 있는 귀공자나 탕자의 완구로 적당한 사치품이기 때문에 팔리는 것은 아닐 거다.
(중략)
지금 이 원고는 로안 군이 써보라고 선물해 준 오노토를 쓴 것인데,
대단히 기분 좋게 술술 써져서 유쾌했다."
나쓰메 소세키는 만년필 광 까지는 아니지만 만년필을 좋아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글에서 나온 오노토 만년필은 영국의 대표적인 만년필 브랜드입니다. 금세공 보석상과 펜 장인들로 이루어진 소규모 팀에 의해 수작업으로 만들어지고, 한정된 숫자로만 제작되는 오노토 만년필.
영국 대영박물관과 협업한 만년필을 출시할 정도의 럭셔리한 만년필입니다. 담백한 나쓰메 소세키의 글과 상반 럭셔리함의 오노토 만년필. 그래서 어딘가 모르게 오노토와 소세키 잘 어울리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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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토의 대영박물관 콜라보레이션 컬렉션(출처 : ONOTO 공식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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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스트 헤밍웨이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만년필 공장 넘어 군인병원에서, 운전병으로 일했던 헤밍웨이. 그는 몬테그라파 만년필로 ‘무기여 잘 있거라’를 썼습니다.
몬테그라파는 이탈리아의 만년필 명가입니다. 수십 명의 장인들이 만년필을 만들고 있죠. 한때 리치몬트 그룹에 매각되기도 한 몬테그라파. 회사 설립 20주년인 1982년부터 한정판 제품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만년필 뚜껑에는 한정 제작 개수와 일련번호가 새겨져 있어요.
목화 섬유에서 추출한 셀룰로이드를 진주조개 분말과 색소를 섞어 18개월 동안 2%대 수분 함량으로 숙성시켜 다양한 귀금속 조각 기법으로 섬세하게 가공하고, 여기에 18K 금으로 이뤄진 펜촉! 정말 럭셔리의 정수입니다. 이런 만년필로 쓰면 글 하나에도 더욱 섬세한 무게감이 실릴 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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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그라파의 밍웨이 컬렉션(출처 : ovelli.i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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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는 것에 진심인 여러분들을 위해 만년필에 대한 몇 가지 책을 추천합니다.
첫 번째는 바로 박종진 저자의 <만년필 탐심>입니다. 박종진 저자는 문보장 성수 팝업스토어에서 열린 문구에 진심인 브랜드 세션의 연사이기도 했지요. 이 책이 특별한 것은 만년필을 매개로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만년필을 통해 인문학의 흔적을 찾는 책이지요.
히틀러가 쓴 펜, 만년필로 보는 북미 관계 등 만년필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으신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두 번째는 김덕래 저자의 <제 만년필 좀 살려주시겠습니까?>입니다. 이제 한 번 만년필 좀 써볼까? 하시는 분들에게 추천해요. 입문용 만년필부터 명품 만년필, 한정판 만년필까지 나만의 만년필로 나만의 역사를 써 내려가고자 하는 여러분들께 가이드가 될 책이에요.
이 책들은 모두 교보문고에서 만나실 수 있는 것 다 아시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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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쓰기'에 진심일 사람들을 위해 문보장 동물 친구 '사슴'이 추천하는 만년필 브랜드는 '파이롯트'입니다. 사슴은 얇은 굵기의 만년필을 좋아해 파이롯트 만년필을 좋아한다고 하네요. 파이롯트에 많은 만년필 중 가장 추천하고 싶은 것은 라이티브 만년필이에요. 12g으로 아주 가볍고, 적당한 가격대로 만년필에 입문하고 싶은 분들이나 부담 없이 쓸 수 있는 데일리 만년필이 필요하신 분들에게 적합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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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보장 2호점 OPEN!
지난 12월 8일 교보문고 강남점에 문보장 2호점이 오픈했습니다!
도심 속 문구 아지트이자 문구 보물 창고인 문보장. 문보장 2호점은 '책가도'를 모티프로 한 잉크 바를 비롯해 읽고 쓸 수 있는 필사존, 국내외 다양한 문구 보물들 그리고 문보장의 귀여운 동물 친구들로 많은 분들이 방문해 주고 계세요.
오픈 기념 프로모션으로 3만원 이상 구매 시 2024년 문보장 캘린더를 증정하고 있으니, 이번 주말은 문보장에서 소중한 읽고 쓰는 추억을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 교보문고 강남점(서울 서초구 강남대로 465 교보타워 지하 1층, G 코너) ⏰ 운영시간: 월-금 9:30-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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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일기 쓰기
문보장에서 연말을 맞이해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했습니다. 문보장이 제안하는 조금 특별한 일기 쓰기!
'착한 일기 쓰기'입니다.
올해 내가 한 착한 일기를 쓰면 산타로 변한 문보장 동물 친구들이 크리스마스에 향을 더할 선물을 드립니다. 이벤트 참여는 하단 <지금 참여하기> 버튼을 클릭해 문보장 인스타그램에서 참여할 수도 있고, 문보장 광화문점에 방문해 현장에서 QR코드를 통해 참여할 수 있어요. 따뜻하고 정겨운 여러분의 착한 일기를 기대하며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문보장 광화문점에서는 교보문고 시그니처 향 크리스마스 에디션으로 꾸며진 트리를 만나볼 수 있으니, 이번 연말 트리 구경은 문보장으로 가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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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기간 : 23년 11월 24일 (금) ~ 12월 31일 (일) ✅당첨자 발표 : 24년 1월 중순 개별 안내 ✅경품 : 교보문고 시그니처 향 크리스마스 에디션 (교보문고 시그니처 향 룸스프레이 60ml + 크리스마스 페이퍼 오너먼트 5개) *패키지 박스 및 쇼핑백 포함 ✅당첨 인원 : 3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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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올해 마지막 보물 상자를 열어보았습니다.
올 한 해를 정리해 보고 내년을 준비하는 이 시기.
오늘 소개한 만년필로 나만의 역사를 기록하고 만들어 가보면 어떨까요?
어떻게 될지 모르죠. 위대한 역사의 순간을 함께한 만년필처럼.
우리의 위대한 순간을 만년필이 만들어줄지!
언젠가 문보장 1991을 만년필로 써 내려갈 수도 있다는
다소 읽고 쓰는 것에 진심인 엉뚱한 상상과 함께
오늘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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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보장 1991
도심 속 문구 아지트 교보문고 문보장이
매달 15일, 오직 매달 191명의 구독자와 함께
문구 보물 상자 여는 뉴스레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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